위기를 기회로
에어프로덕츠(Air Products), 산업 현장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세계를 움직이는 기업 본문
공장이 돌아가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전기, 원자재, 인력. 여기까지는 누구나 생각합니다. 그런데 정작 그 공장 안에서 쉴 새 없이 소비되고 있는 또 다른 필수 자원이 있습니다. 산소, 질소, 수소, 헬륨 같은 산업용 가스입니다.

반도체 공정에는 초고순도 질소와 수소가 들어갑니다. 철강을 만들 때는 산소가 대량으로 필요하고, 병원 수술실에는 의료용 산소가 끊임없이 공급되어야 합니다. 우주로켓에도 액체 수소가 연료로 들어갑니다. 이 모든 곳에 조용히 가스를 대주는 기업이 있습니다.
에어프로덕츠(Air Products)입니다. 뉴욕 증권거래소에 티커 APD로 상장된 이 기업은 대중에게 거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전 세계 50개국에서 19,000명의 직원이 일하고, 연간 매출이 120억 달러에 달하는 산업용 가스 분야의 글로벌 대기업입니다. 1940년에 설립되어 85년 넘게 산업 현장의 배후를 지켜온 기업이기도 합니다.
1940년, 아무도 생각 못 했던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에어프로덕츠의 창업 스토리는 꽤 흥미롭습니다. 1940년 레너드 파울러(Leonard Parker Pool)라는 사람이 당시로선 꽤 엉뚱한 아이디어를 들고 나왔습니다. 산업용 가스를 공장에서 만들어 판매하는 게 아니라, 고객 공장 안에 직접 가스 생산 설비를 설치하고 운영하겠다는 방식이었습니다. 지금은 당연하게 들리지만, 당시에는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이 방식을 '온사이트(On-site)' 공급이라고 합니다. 고객 입장에서는 가스 저장 탱크나 배송을 걱정할 필요가 없고, 에어프로덕츠 입장에서는 한 번 설비를 깔면 장기 계약이 보장됩니다. 윈윈처럼 보이지만 당시에는 설득이 쉽지 않았습니다. 창업 초기에는 투자자를 찾지 못해 자동차 트레일러에 소형 가스 생산 장비를 싣고 다니며 임시 공급을 하는 방식으로 버텼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래도 결국 이 모델이 먹혔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에 산소와 수소를 공급하는 계약을 따내면서 회사가 안정됐고, 이후 철강, 화학, 정유, 전자 산업이 성장하면서 에어프로덕츠의 고객층도 함께 커졌습니다.
지금 에어프로덕츠가 공급하는 가스 종류를 보면 범위가 상당히 넓습니다. 산소(O₂), 질소(N₂), 수소(H₂), 아르곤(Ar), 헬륨(He), 이산화탄소(CO₂) 같은 기본 가스부터, 반도체 공정에 쓰이는 특수 가스까지 다양합니다. 납품하는 산업도 석유 정제, 화학, 철강, 전자, 의료, 식품, 항공우주까지 걸쳐 있습니다. NASA에 액체 수소를 공급하는 계약을 1억 4천만 달러 이상 규모로 수주했다는 사실이 2026년 초에 발표되기도 했습니다. 우주 개발 붐이 에어프로덕츠와도 연결되는 부분입니다.
이 회사의 비즈니스 모델이 가진 가장 강력한 특성은 고객이 한 번 들어오면 잘 나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공장 안에 가스 공급 배관과 설비가 이미 에어프로덕츠 시스템으로 연결되어 있으면, 경쟁사로 바꾸려면 공장 가동을 멈추고 설비 전체를 교체해야 합니다. 현실적으로 그게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에어프로덕츠의 장기 계약 고객 비율이 높고, 매출의 상당 부분이 안정적으로 반복됩니다.
수소 경제의 핵심으로 들어가려는 전략
에어프로덕츠가 요즘 가장 공을 들이는 분야가 수소입니다. 그것도 기존의 '회색 수소'가 아니라, 탄소 배출을 줄이거나 없앤 '청정 수소' 쪽입니다.
수소는 이미 에어프로덕츠의 핵심 사업입니다. 세계 최대 수소 공급업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습니다. 제3자 산업용 가스 공급업체 중 수소 부문 시장 점유율이 50%에 달한다는 수치가 그걸 보여줍니다. 오랫동안 정유 공장, 화학 공장, 반도체 생산시설에 수소를 공급해 온 기업입니다.
그런데 지금 에어프로덕츠가 베팅하고 있는 건 규모가 다릅니다. 루이지애나 주에 짓고 있는 저탄소 수소·암모니아 생산 시설 프로젝트가 대표적입니다. 하루 7억 5천만 표준입방피트 이상의 저탄소 수소를 생산하고, 이산화탄소는 95%를 포집하는 방식으로 운영할 예정입니다. 이 수소로 암모니아도 연간 280만 톤 생산합니다. 총 투자 규모가 80~90억 달러에 달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네옴(NEOM) 그린 수소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사막의 태양광과 풍력으로 전기를 만들고, 그 전기로 물을 분해해서 수소를 얻는 방식입니다. 탄소 배출이 거의 없는 진정한 의미의 청정 수소 생산입니다. 노르웨이 비료 기업 야라(Yara)와는 루이지애나와 사우디 프로젝트에서 생산된 암모니아를 야라의 글로벌 유통망과 연결하는 협상도 진행 중입니다. 2026년 중반에 최종 투자 결정이 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렇게 큰 프로젝트에 돈을 쏟아붓다 보니, 2025 회계연도 실적은 GAAP 기준으로는 적자가 났습니다. 대규모 일회성 비용이 반영된 결과입니다. 하지만 이걸 단순히 '손실'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일회성 항목을 제외한 조정 EPS는 12.03달러로, 가이던스를 상회했습니다. 회사의 실제 영업 체력은 나쁘지 않습니다.
2026 회계연도 1분기 실적은 긍정적이었습니다. 조정 EPS가 전년 동기 대비 10% 올랐고, 조정 영업이익은 12% 개선됐습니다. CEO 에두아르도 메네세스는 "기초 사업에서 강한 성과를 냈다"고 밝혔습니다. 배당도 44년 연속 인상을 기록했습니다. 주당 1.81달러로 올린 분기 배당입니다. 44년 연속 배당 인상이라는 숫자, 그냥 넘기기엔 아까운 수치입니다.
산업용 가스라는 조용한 독점, 그리고 남은 과제
에어프로덕츠를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게 경쟁 구도입니다. 산업용 가스 시장은 전 세계적으로 에어프로덕츠, 린데(Linde), 에어리퀴드(Air Liquide), 에어가스(Airgas) 정도가 과점 형태로 나눠 갖고 있습니다. 신규 진입자가 들어오기 매우 어려운 구조입니다. 생산 설비, 파이프라인 네트워크, 운반 트럭 등 막대한 인프라 투자가 필요하고, 고객과의 장기 계약이 이미 묶여 있기 때문입니다.
헬륨은 별도로 언급할 필요가 있습니다. 에어프로덕츠는 세계 최대 헬륨 공급업체 중 하나인데, 헬륨 수급이 불안정하면 실적에 직접 영향을 미칩니다. 2025~2026년에도 헬륨 수요 부진이 발목을 잡은 부분이 있었습니다. 헬륨은 반도체, MRI 장비, 우주 산업 등 다양한 곳에 쓰이는데, 생산지가 미국, 카타르, 러시아 등 일부 지역에 집중되어 있어서 지정학적 변수에 취약합니다.
수소 프로젝트의 규모가 워낙 커서 자본 지출 부담도 큽니다. 2025 회계연도에만 약 50억 달러를 설비에 투자했습니다. 2026년에는 40억 달러로 줄인다는 계획인데, 여전히 상당한 규모입니다. 이 투자가 언제 수익으로 돌아오냐가 투자자들의 가장 큰 관심사입니다.
루이지애나 프로젝트는 미국 정부의 탄소 포집 세금 공제 제도인 45Q 크레딧을 받을 수 있어서, 첫 12년 동안 주당 수익 기여가 의미 있는 수준으로 올라올 것으로 회사는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주 시장에서도 에어프로덕츠는 1960년대부터 NASA에 액체 수소를 공급해온 역사가 있습니다. 미국 내 우주용 가스 시장 점유율이 40~50%에 달한다고 회사 측은 밝히고 있습니다. 민간 우주 발사 시장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는 점이 에어프로덕츠 입장에서는 새로운 성장 기회입니다.
85년 넘게 산업 현장의 뒤에서 조용히 존재해온 기업입니다. 전기차를 만들든, 반도체를 찍든, 철강을 녹이든, 로켓을 쏘아 올리든. 그 어딘가에 에어프로덕츠가 공급하는 가스가 쓰이고 있습니다. 화려하지 않지만, 없어서는 안 될 기업이라는 점에서 에어프로덕츠는 꽤 독특한 위치에 있습니다.
수소 에너지 전환이 실제로 큰 시장이 될지는 아직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 흐름이 본격화됐을 때 가장 앞자리에 있을 기업 중 하나가 에어프로덕츠라는 건 부정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